Korea Florist Course 8.

한국 플로리스트 과정 8기 졸업생

 

작성자 admin 시간 2019-03-18 17:29:54 조회수 2028
네이버
첨부파일 :

 

19_08_16_1_54.jpg 

안녕하세요 문현선 플로리스트 아카데미 한국 플로리스트 과정 8기 이수현 입니다.

 

저의 이름 앞에 한국플로리스트8기라는 문장을 써넣을 수 있게 된 지 벌써 한달이 훌쩍 넘었는데

아직까지 실감나지않으면서도 마음 한 켠에 무거운 책임이 느껴집니다.

왜냐면 남은 내 인생의 전부가 될 이 직업을 위해 나 스스로에게 떳떳할 만큼 잘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들리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부터 진솔하게 이야기 형식으로 한국 플로리스트 8기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소감을 써내려가려 합니다.

 

# 30대에 전문성에 대해 다시 고찰하다.

 

서른 한 살 겨울까지 저는 평범한 직장인 이었습니다.

약8년 가까이 ‘회사’라는 곳이 나에게 던지는 업무 내용에 따라 나를 맞추어가면서 열심히 살았어요.

저에게 주어진 업무에 대한 애정도가 컸기에 업무에 맞는 지식과 스킬 그리고 태도를 갖추려 무던히 애썼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라 믿고 기대하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전문성이라는 것은 회사 그 자체에서 키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면, 같은 일을 해도 이 회사에서는 이런 방법을 저 회사에서는 저런 방법을, 케이스에 따라 일을 시키는 사람에 따라,

맡은 사람에 따라 일의 내용에 따라 상황에 따라 과거 이력에 따라 등등등..  원리 원칙이 자꾸만 달라지더라고요.
 
그렇다보니 지식과 스킬이라는 것이 쌓여서 탄탄한 밑거름이 되어 새로운 내용을 재탄생시키는 전문성이 가진 사람이 된다기 보다는

회사가 나에게 요구하는 만큼만 하는 사람이 되어버리 더라고요.

그리고 그 요구들에 대한 반발심이 일어나면서부터 저는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질문했습니다.

정말 이 만큼만 알고, 이 만큼이 전부인 것 처럼 옳고그름을 따져가면서 커리어를 쌓지도 못하는 이런 삶을 살아가는 것이 후회없는 일일까?

라고요.
 
물론 답은 아니다 였죠. 

결국 발전이 없는 나로 살고 싶지가 않아서, 우물안 개구리가 되기 싫어서, ‘원래그래’라는 근거없는 ‘원래’를 외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퇴사를 결심합니다.
 
 

# 플로리스트?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던 가장 최초의 계기는 몇몇 연예인들이 꽃으로 직업을 갖게 되었다고 홍보하게 되면서

그런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정도였어요.

그러다 우연찮은 만남으로 오랫동안 플로리스트로 일하신 분으로부터 ‘수현, 플로리스트 하지 않을래? 너랑 잘어울릴 것 같애’ 라는

제안을 거절하려고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알게 되었죠.
 
그 분은 저에게 미국 어느 자격증만 따면 미국에서도 일할 수 있고, 한국에서도 일할 수 있고 멋진커리어를 쌓을 수 있으니

돈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다 좋았는데 돈을가져오라는 대목에서 힘주어 말씀하셔서 거절만 했었죠ㅎㅎ
 
그러다 2년 전 서른 한 살 겨울. 패기 있게 퇴사를 결정하고 떠오른 것이 플로리스트 입니다.

그리고는 검색합니다. 네이버에. 플로리스트 … 당연히 저희 선생님의 글(http://Florist.co.kr)이 제 눈 앞에 쏟아졌습니다.
 
 

# 달달달


 
글을 통해 선생님이 설명하신 플로리스트는 그동안 제가 알고 있던 플로리스트와 달리 훨씬 더 멋져보였어요.

그냥… 예쁜 꽃집 아가씨가 되는게 아니라 능력을 가진 직업인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죠.

당시 저는 블로그로만 선생님을 만났는데 교육 당하기 시작했어요.
 
플로리스트가 되려면 제대로된 직업교육을 거쳐야해!

자격증만 갖고 있다고 다 되는게 아니야!

잠잘거 다 자고 놀거 다 놀고 직업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플로리스트가 얼마나 전문성을 필요로하는 자부심이 있는 직업인지 제대로 알고 시작해!

등등


 
모니터 앞에서 정신교육 및 결단 후 질문거리 A4용지에 한바닥 써서 방문상담을 위해 학원으로 발걸음을 합니다.

(물론 상담 신청 한 후에 말이죠)

보통 교육실장님을 통해 상담을 받는데 그날 하필.. 선생님과 1:1 상담을 하게 되어서 A4용지를 펼치기는 커녕 손만 달달 떨고 돌아왔어요.

그래도 물어볼 수 있는 것은 다 물어보았습니다. 

 

# 실전, 나와의 싸움.


 
상담 후 자격시험에 합격해 플로리스트가 되는 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직업을 바꾼다는 것은.. 하루에 밥 한끼 겨우 먹고 새벽3시까지 야근한 후 마비된 얼굴로 퇴근하는 것보다도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바로 나 자신과의 싸움이거든요.

정확하게 말하면요 싸움을 시작 하기도 전에 넉다운 됩니다.

진짜 무능한 나를 대면한다는 것도 멘탈이 깨지는 일이니까요.

연습이라는 것을 하면 할수록 발견되는 것은 내가 얼마나 게으른지, 얼마나 굼뜬지, 얼마나 실현을 못하는지,

얼마나 생각에서 그치는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거울이거든요.
 
선생님이 무섭고, 혼나는것 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나 스스로 때문에 실망하고 위축되고 늘어지고 핑계대는 일입니다.

그리고 진짜 진짜 어려운 것은 그런 나를 스스로 다독여서 일어나 연습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구요. 

연습이라는 것은 정말로 해야만 연습이 되는 것이지 하려고 생각했다고 해서 연습이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또, 연습이라는 것이 한번 할 때 제대로 하지 않으면 잘못된 습관을 길러서 잘 안고쳐지는 지경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ㅎㅎ

연습을 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그냥 마구 하기만 한 적이 있어요.

정말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건 더 이상 연습이 아니라 그냥 doing에 그친 것이었지요.

 

# 선택을 할 것이라면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 글을 꼼꼼히 읽는 이유는 공감을 얻거나 위로를 받기 위한 것도 있겠지만

택에 참고를 하기 위해서 읽으시는 것일 거에요

아카데미에 상담을 신청할지, 자격시험을 볼지, 1단계를 정말로 시작할지, 1단계분들 중에서는 계속 해야 할지말지, 2단계 갈지 말지,

2단계 분들 중에서는 포트폴리오에 응용작에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있을까 고민도 하고 과연 내가 이대로 3단계까지 가는게 맞을까 아니면

여기서 그만두는게 맞을까 등등을 고민하고 계시겠지요
 
사실 저는 답은 못드립니다.

왜냐면 그 모든 고민의 근원은 내가 정말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내 인생의 마지막 직업으로 삼을 것인가 아닌가에 달려있으니까요. 

그래서 조언을 드리자면 끝까지 과정을 마치고 직업현장에 뛰어 들어서도 그만두지 않을 마음의 각오를 선택의 기로 앞에서 계속 계속

쌓아나아가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는 이제 더 이상 다른 직업을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혹여 플로리스트가 되었는데 내가 생각한 것 보다 월급이 적다 해도 바꾸지 않을 생각 이에요.

직업 현장에서 일어나는 인간관계, 처음 해보는 일에 대한 어려움, 내용의 어려움, 등등 닥치는 어려움이 무엇이든 간에

저는 직업을 바꿀 생각이 없어요.

 

흔들릴수는 있겠죠.. 흔들릴 때는 단지 각오를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 같아요.
 
그냥 배워볼까 말까, 단계를 넘을까 말까 라는 눈앞에 있는 상황을 넘길 답이 아니라 이 직업을 인생의 마지막 직업으로 삼을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진솔한 마음의 소리를 듣고 선택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의 소리를 따라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마시고 자신의 길을 가셨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길고 긴 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소 가벼운 것 같으나 진심을 다해서 썼어요.

저는 이제 서른 넷의 기혼자이며 부모님을 부양한다는 것이 삶으로 찾아온 무거운 마음을 한아름 안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참 감사한 것은 2016년, 2017년 많이 성장했고 많이 배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상황과 상관없이 해낼 수 있는 나를 발견해서 마음이 많이 강해진 것 같아요.

 

앞으로 더 많은 과정이 남아있지만, 저는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요. 

 

%EC%9D%B4%EC%88%98%ED%98%841.jpg
2018_736.jpg
2018_710.jpg
2018_712.jpg
2018_713.jpg
2018_715.jpg
2018_717.jpg
2018_721.jpg
2018_723.jpg
2018_732.jpg
2018_733.jpg
2018_1088.jpg
2018_1086.jpg
2018_1079.jpg
2018_1107.jpg
2018_1083.jpg
2018_1081.jpg
2018_1095.jpg
2018_1093.jpg
2018_1104.jpg
2018_1106.jpg
2017_847.jpg
2017_849.jpg
2017_846.jpg
2017_850.jpg
2017_845.jpg
2017_856.jpg
2017_852.jpg
2017_853.jpg
2017_855.jpg
2017_854.jpg
2017_858.jpg
2017_860.jpg
2017_859.jpg
2017_861.jpg
2017_865.jpg
2017_863.jpg
2017_869.jpg
2017_866.jpg
2017_870.jpg
2017_868.jpg
2017_1050.jpg
2017_1049.jpg
2017_1064.jpg
2017_1048.jpg
2017_1051.jpg
2017_1062.jpg
2017_1053.jpg
2017_1059.jpg
2017_1058.jpg
2017_1060.jpg
2018_234.jpg
2018_236.jpg
2018_256.jpg
2018_233.jpg
2018_235.jpg
2018_237.jpg
2018_238.jpg
2018_239.jpg
2018_241.jpg
2018_240.jpg
2018_357.jpg
2018_359.jpg
2018_360.jpg
2018_361.jpg
2018_363.jpg
2018_369.jpg
2018_379.jpg
2018_378.jpg
2018_373.jpg
2018_381.jpg
2018_508.jpg
2018_502.jpg
2018_503.jpg
2018_511.jpg
2018_505.jpg
2018_512.jpg
2018_521.jpg
2018_523.jpg
2018_522.jpg
2018_500.jpg
2018_573.jpg
2018_575.jpg
2018_576.jpg
2018_579.jpg
2018_580.jpg
2018_581.jpg
2018_584.jpg
2018_585.jpg
2018_587.jpg
2018_602.jpg
2018_15.jpg
2018_21.jpg
2018_4.jpg
2018_317_1.jpg
2018_816.jpg
2018_2.jpg
2018_565.jpg
2018_534.jpg
2018_570.jpg
2018_547.jpg